비엔날레에 대한 도전, 혹은 새로운 형식적 실험 -카탈로니아 파빌리온

글▮신보슬(큐레이터, 토탈미술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비엔날레는 늘 김빠진 사이다 같다. 광주/부산등의 한국비엔날레는
물론이고 비엔날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증명을 통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올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상 돌아가는 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바이, 아부다비 의 건설 붐을
반영하듯 다양한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전시라기 보다는 도시 프로모션 부스같은 느낌이 좀 더
많이 들었지만, 중동 바람은 베니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러시아 올리가르흐
집안에서 만들었다는 소문의 전시도 있었으며, 국가관들은 경쟁적으로 M&A를 하듯 통합과 국가
개념과 무관한 전시들이 펼쳐졌다. 이들은 100 년이 넘는 비엔날레의 전통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했고, 식상해진 틀에서 벗어나려는 형식적인 실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들은 예술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후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총감독 다니엘 번바움(Daniel Burnbaum)이 이야기했던 ‘세상 만들기’의 첫
출발인지도 모르겠다.
국가관 이슈중 하나는 카탈로니아 파빌리온의 등장이었다. 스페인관이 자르디니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탈로니아 지역은 별도의 파빌리온을 개관했다. 카탈로니아 파빌리온은 카탈로니아
지역의 작가 및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라몬 룰(Ramon Lull Institute)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면서 문을 열었다. 물론 이전에도 웨일즈 파빌리온, 타이완 파빌리온과 같이 국가관이
별도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이유로 기관이 지원하여 파빌리온을 열었던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카탈로니아 파빌리온을 주목하는 데에는 단순히 스페인의 제2
파빌리온이기 때문이 아니라, 커미셔너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며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5월 심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전체 방향성을 잡은 이후,
7 월 공개공모를 발표, 9 월 접수 마감의 일정을 통해 무려 18 개의 프로젝트 제안서가
접수되었고, 발렌틴 로마(Valentin Roma)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The Unavowable
Community>라는 전시가 선택되었다.
<밝힐 수 없는 공동체>는 모리스 블랑쇼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발렌틴 로마는 이 전시를
통해 예술작업에 있어서의 공동작업의 본성이라는 것을 되묻고 있었다. ‘코뮤니즘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어떤 것’이라고 해석했던 블랑쇼의 말을 빌면서, 발렌틴 로마는 하나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 혹은 작가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활동을
펼치는 세 개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의/테크놀로지 투 더
피플(Technologies To The people)의 <포스트캐피탈 아카이브 1989-2001 Postcapital Archive
1989-2001>’, ‘요안 빌라-푸이히와 엘비라 뿌욜의 <사이트사이즈 Sitesize>’, ‘페드로 G.
로메로의 <아키보 F.X Archivo F.X>’ 이번 전시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프로젝트는
<포스트캐피탈>이었다. <포스트캐피탈>은 인터넷에서 얻은 250,000 개의 자료를 소개하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로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점에서 911 사대까지의 기간동안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오디오/비디오자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서, 출판물들이
총망라되었다. 인터넷 아카이브 해킹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는 <포스트캐피탈>의 모든 자료와
내용물은 작가의 고유 고안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들이
현대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협업작업의 하나로 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행사의 파빌리온에서 전시되었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카탈로니아 관에서의 열린 <포스트캐피탈>전은 전시 제작은 독일 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담당하였고, 향후 한국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전시자체가 글로벌한 팀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슈트트가르트-중국 베이징의 여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각 지역에 맞게 조금씩 아카이브
내용이나 주제들이 변하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한다는 것 역시 예술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의
연장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냥 지나쳐갈 수 없는 전시 중 하나는 <FEAR>였다. 많은 부대전시
중 하나였던 <FEAR>는 아르스날레 전시장에서 약 5 분정도 배를 타고 가서 보아야 했는데,
‘새로운 세상만들기’라는 전체 주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방향이 제대로 읽히지
않았던 본 전시와는 달리, 아주 구체적이게 정치적 예술에 대해서 언급하는 전시였다.
드라마틱하게 변화되는 세상 안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는 가운데, ‘공포’라는 주제와 마주한 이 전시는 ‘공포’라는 것이 어떤 두려움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느끼는 감정이며,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지만, 공포를 경험하는 것은 역사적인 문화적인
것에 의해 영향받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큐레이터인 요타 카스트로(Jota Castro)는 공포사회(fear
society)라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예술로 거울처럼 바라보고자
했다고 했다.
사실 이번 비엔날레는 ‘세상 만들기’라는 주제가 무색할 정도 장식적이거나, 추상적인 혹은
지나치게 미니멀하거나 개념적인 작품들이 많아 의식있는 큐레이터의 관점이 담긴 전시에 갈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안 룰렛을 하며 예술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치적 예술이 나아가야 하는 길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여 큐레이터와의 대화시간에 ‘러시안 룰렛’ 퍼포먼스를 펼쳐보이며 관객을 ‘공포’에 떨게했던
<공포>전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음번 베니스 비엔날레도 아마 별반 새롭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하지만, 무수히 많은
전시들 사이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들이 하나나 둘 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반향이 펼쳐지면서, 뭔가 또 다른 이슈들을 만들어내고, 담론을 펼쳐나갈 것이다.
그것은 비엔날레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고, 비엔날레를 쇄신시키는 새로운 자양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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